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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 선언

 

유 지 원

서울 연신내

2021년 10월 31일

 

39번에게

안녕, 오랜만에 연락해.

연신내는 10년 전 등교할 때랑 별로 변한 게 없어. 달라진 점이라면 코로나 때문에 10시 이후로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다는 것과 6번 출구가 새 지하철 공사 때문에 막혔다는 건데, 그밖에는 없어.

너가 박사과정을 밟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어. 너도 여전히 물리학 연구를 하고 있구나. 나도 10년 전과 똑같이 그림을 그리고 있어. 잠시 학생들을 가르친 적도 있는데, 난 아무래도 혼자 일하는 게 더 맞는 것 같더라. 너도 대학에 들어가고 잠깐 과외를 했다고 들었어. 박사과정을 진행하고 있는 걸 보면 너도 여전히 연구직이 더 맞나봐. 

난 아직도 너와 등교하던 그때 그 주제에 머물러 있어. 1년 동안 등교하며 나눴던 이야기를 여전히 매년 반복하고 있거든. 매번 다른 비유와 더 나은 설명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너가 내 그림들을 본다면 단번에 그때 그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걸 알 거야. 그리고 그때 그 이야기를 또, 다시 하고 싶어서 연락해.

앞으로도 이 결론이 계속 유효할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이번에 내가 내린 결론을 말하자면, 관계는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는 거야. 관계는 아무리 미약하고, 부정적이고, 거의 의식하지 못하게 돼버리거나, 사라진 듯이 느껴지더라도 관계라는 이름 아래에 끊어지지 않고 유지되고 있어.

이번에 내가 해 본 실험을 설명할게. 난 지난 6년 동안 6개의 리스트를 만들었어. 그리고 각 리스트 내 항목들의 관계는 얼마나 미약해지면 끊어지는지, 항목들과 제목의 관계는 얼마나 나약한지를 파악해 보고자 했어. 그리고 그 리스트들로 이뤄진 대분류, <리스트-리스트>를 만들어 다시 한 번 관계 실험을 진행했어. 

첫 번째 실험은 항목 간의 그리고 제목과의 관계성이 너무 뚜렷해 실험의 의미가 없었어. 그리고 두 번째 실험은 제목이 너무 방대해서 어떤 항목도 리스트에 들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멈췄어. 

유효한 실험은 세 번째부터였어. 두 번째 실험에서 난 이 리스트의 제목이 바뀌어도 리스트가 성립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 했어. 두 번째 실험에 사용된 제목은 <구린 오브제 리스트>였는데, 이 리스트의 이름이 <내가 아는 것 리스트>, <사용된 적이 있던 것들> 또는 <좋은 오브제 리스트>로 제목을 바꿔도 말이 될 것 같았어. 이를 통해 어쩌면 리스트 실험이 미약한 관계 혹은 관계 끊기 실험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매체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미약한 관계는 실존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세 번째 리스트를 제작했어.

세 번째 리스트는 한 사물이 예술이 되게 도와줄 수 있는 사물들을 모은 리스트였고, 난 여기에 50개의 항목을 집어넣을 수 있었어. 이 리스트에서 어떤 항목들은 누가 봐도 항목들끼리 혹은 목적 사물과, 혹은 이 주제와 아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항목이었던 반면, 어떤 항목들은 다른 항목들과 너무 동떨어져 있는 항목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항목이었어. 

하지만 이 모든 항목은 리스트가 되어 리스트로서 예술이 되고자 하는 사물을 돕는데 제 역할을 수행했어. 결국 소외된 항목은 없었던 거야. 세 번째 실험은 미약하다고 느껴지는 관계도 작동은 한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진짜 미약한 관계는 실존하는가에 대한 대답은 되지 못했어. 

네 번째 실험은 84개의 항목으로 이뤄진 제목 없는 리스트였어. 세 번째 실험의 리스트 내 요소 중 미약하다고 느껴지는 요소들이 결국 주제 아래에 쉽게 단합돼 버리는 걸 보고 과연 '리스트'라는 상태 아래에만 있고 어떤 주제로 묶여 있지 않은 요소들도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를 실험해 보고자 했어.

리스트 내 항목들을 묶지 않기 위한 시도의 결과는 '나의 존재'로 실패했어. 나에게 선택되었다고 혹은 나에게 왔다는 것이 제목이 되어버리고 리스트 내 요소들은 그 목적을 위한 요소들로 변한 거지. 그리고 그 외에도 다양한 이 84개 항목을 묶을 수 있는 제목이 존재할 거라는 상상이 들었어. 하지만 말처럼 쉽게 제목이 생성된 건 아니라고 봐. 내가 어떻게든 이들을 묶지 않기 위해 고민했기 때문에 제목이 생긴 거니까. 그리고 내가 이 리스트에 대해 고민한 만큼 항목 간의 관계는 미약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시간이 좀 지나고, 30개의 항목으로 이뤄진 리스트를 만들어 다섯 번째 실험을 시작했어. 리스트 내 사물들의 관계를 어떻게든 끊기 위한 노력이 이전 실험이었다면, 이번 실험은 제목의 나약함에 대한 실험이었어. 두 번째 실험에 사용된 리스트  <구린 오브제 리스트>을 진행하며 떠올랐던, 리스트에 어떤 제목을 붙여도 리스트가 성립될 수도 있겠다는 추측이 진짜인지를 알아보려 했어. 한 주제 아래 아주 강력하게 묶일 수밖에 없는 리스트를 제작한 뒤, 그 리스트의 이름을 바꾸는 실험을 했어. 그리고 그 결과는 성공이었어. 사람들은 모두 그 리스트와 바뀐 이름의 관계에 의구심을 품지 않았어.

네 번째 실험에서의 항목 간의 끊어지지 않음과 다섯 번째 실험에서의 주제와 대상의 미약한 관계를 통해 결국 남는 것은 주제도, 항목의 종류도 아닌 리스트뿐이란 걸 알았어.

여섯 번째 리스트 실험은 아주 긴밀한 관계에 대한 실험이었어. 그 누구도 주제와 항목 간에 그리고 그 항목 간에 연관성이 적다고 말하기 어려운 리스트를 만들어 보고자 했어. 미약한 관계성을 띤 리스트들만 만들어 와서, 대조군이 필요했거든. 이 실험은 수월하게 끝났어. 물론 모든 사람이 이 긴밀한 관계를 긴밀하다고 여기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전 실험들을 신뢰할 수 있을 만큼의 긴밀함은 만들어 냈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마지막 리스트 실험, <리스트-리스트> 만들기를 시작했어. 새로운 뭔가를 한 건 아니고, 그냥 이 리스트들의 상위 리스트의 제목과 그 의의를 정하는 거였어. 아직 마지막 실험인 리스트의 제목 정하기는 완성을 못했어. 대신 이전의 실험에서 마주한 모든 문제를 이 과정 내에서 모두 발견할 수 있었어.

요소 간의 의미를 잃을 정도의 뚜렷한 관계, '제목이 될 수 있는 것들' 리스트의 방대함, 절대 끊어지지 않는 관계, 그 관계를 만드는 것들의 미약함, 주제와 대상의 미약한 관계, 미약한 관계의 존재까지. 이 모든 문제가 실은 리스트를 만들 때면 언제든 무조건 등장하는 문제들인 건 아닐까?

난 그림을 그리니까. 이 연구 주제를 긴 시간 동안 끌고 오면서 자연스레 내 그림에 대입해 생각해 봤어. 그리고 이 실험의 범용성을 확인했어. 화면과 글의 긴밀하지만, 미약한 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거든. 화면과 이야기는 절대 떨어질 수 없고, 그 절대 떨어질 수 없는 만큼 화면과 이야기, 각자는 나약한 소재야.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약하지만 긴밀한 이 둘을 다시 하나로 합치는 법은 없어.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은 관계를 맺는 두 요소가 절대 하나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 아닐까?

중요한 것은 선언하는 거인 것 같아. 관계를 선언하면 관계가 만들어지고, 관계없음을 선언한다 해도 관계가 만들어지니까. 결국 진짜 '관계없는 것'은 선언 이전의 상태일 뿐이야. 선언이 있었다면, 그 관계는 아무리 미약하고 '관계없음'이라고 말하는 게 더 맞을 것처럼 보일지라도 끊어지지 않고 존재해. 내가 그린 자화상을 4년 뒤에 다시 보니 풍경화처럼 보일지라도 그건 결국 자화상이고, 그 자화상을 풍경화라 생각하고 모작한 결과는 결국 풍경화니까.

 

 

 

유 지 원    연 신 내.

서울 연신내에서.

The Manifesto of List

Yoo Jiwon.

Yeonsinnae, Seoul.

31st Oct. 2021

Dear Student number 30939,

Hello, it's been a while.

Yeonsinnae has not changed much since we went to school 10 years ago. The only differences are that there are not many people walking after 10 o'clock because of COVID-19, and exit 6 has been blocked by the construction of a new subway, but it’s only those things.

I heard you start working to get a doctorate and still do the physics research. I'm also drawing the same as 10 years ago. I have taught students for a while, but I think working alone is better for me. I heard that you also had been a tutor for a while after entering college. Seeing that you are working on your PhD, you are more suitable for a research job, too.

I still stand on and repeat the subject that we talked about when going to school. Since I'm constantly trying to find more suitable metaphors and to explain better, I don’t know how other people think about my stance. But if you look at my paintings, you can know that at once I repeat the story we talked about at that time. So, I’m contacting you to talk about that subject again.

I don’t know if this conclusion will be valid in the future. But the conclusion I came up with this time is that “the relationship never disappears.” Although the relationship is tenuous, negative, not able to be aware or even seems like it disappeared, it doesn’t cut off and it is being maintained under the name of the relation.

I will explain to you about my experiment. I have made 6 lists in the last 6 years. In this experiment, I tried to figure out how tenuou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items and the title is and how tenuou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items in each list has to be to break it. Then, I’m making a “List-list,” that is the list consisting of those lists as items, and I’m having the relationship experiment once again.

In the first experiment,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items and the title was so clear that the experiment was meaningless. The second experiment also was stopped because the title was so voluminous that any item could fit into the list.

The third experiment was the first reasonable try. In the second experiment, I thought that this second list can be conceded even if the title of this list would be changed. The original title of the second experiment was List of Bad Objects, and it can make sense to me to change the name of this list to List of Things I Know, Things That Have Been Used, or even List of Good Objects. For this reason, I thought that the list experiment might be the most suitable medium for experiments that dealt with weak relationships or severing relationships, and then I made a third list to prove that weak relationships can exist, not disappear.

The third list was a list of things that could help one “thing” become an art, and I could put 50 items into the list. The items included in the list seemed like that some items on this list were related very closely to each other, some others were supposed well for the “thing” to become art, and also the others were too far from each other.

However, as a result, all of these items became members of the list and helped the “thing” become art as the form of a list. In the list were no neglected items. The third experiment proved that seemingly tenuous relationships can work as a relation, but it didn't give an answer to the question of whether really tenuous relationships can exist.

The fourth proceeded with the list, that has no name, containing 84 items. Doing the third experiment, I saw that the tenuous elements in the list can be easily united under the name of the subject. Thus, I felt I had to experiment with whether elements not tied in the same subject but only under the condition of a “list” can be related.

But my attempt not to tie the elements in the list only failed by the existence of “I.” The fact that these items were chosen by me and came to me became the title subject, and the elements in the list were turned into the basis of the subject. Also, I imagined there can be many other titles to group these 84 items. However, I’m thinking that this list’s title was not created easily. The title came out since I had a lot of attempts not to tie them up somehow. On the other hand, I thought that as much as I agonised over this list, whether or not there is a relationship between the items is tenuous.

After some time, I made a new list with 30 items and started the fifth experiment. Although the previous experiments tried to somehow break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objects in the list, this experiment was about the weakness of the title. Thus, I tried to find out if the speculation that the list could be established no matter what the title was given to the list that came to mind while working on the list used in the second experiment, List of Bad Objects, was true. In this test, I made a list that was bound to be very strongly grouped under one topic, and then I experimented with renaming the list’s title. The result was a success. Everyone had no doubts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list and the changed name.

Through the unbroken relationship between the items in the fourth experiment and the weak relationship between the subject and the objects in the fifth experiment, I realised what was left at the end is only a list, not a subject nor a type of item.

The sixth list experiment dealt with a list having items in close relation. I wanted to create a list that would be difficult for anyone to say that there is no connection between a topic and items. Since I only made lists with tenuous relationships, I needed a contrary group. This experiment went smoothly. Of course, some people can consider this relationship as not being close, but I thought this list created the necessary tightness to be performed as a contrary group.

After that, I started to make the last list, the List-List. Not to make anything new, this work is just to name the title and meaning of the parent list containing the previous six lists as the items. I can’t finalise the title of the last list, yet. Instead, in the process of this experiment, I met again all the problems that I had encountered in previous experiments.

The clear relationship that can lose the meaning between items, the vastness of a list of 'things that can be a title', the relationship has never broken, the weakness of the things making up the relationship, the tenuous relationship between the subject and the objects, and also the existence of the tenuous relationship. Couldn't all of those be problems that always appear whenever we are in a relationship?

Because of this. As I continued this research topic for a long time, I was naturally concerned about how to apply it to my paintings. Also then, I confirmed the versatility of this experiment, since I could see the close but tenuous relationship between a picture and a text. A screen and a story can never be separated, and each of these is a weak subject, as much as not to be separated. However, paradoxically, there is no way to unite these weak but close two forms into one again. Then, once I thought that the reason a relationship is created is that these can never become one.

I think the important thing is the manifesto. Declaring a relation creates a relation. However, also declaring some objects “irrelevant” can create a relationship. Therefore, the real “no relation” is just the state before declaring. If there is a manifesto, the relationship can remain with no break, no matter how feeble and how “irrelevant” it seems more appropriate to say. This is why even if I look back at my self-portrait 4 years later and it looks like a landscape painting, that is just a self-portrait after all, and reproducing my portrait as a landscape after having seen the portrait as a landscape, that painting is a landscape painting.


 

Yeonsinnae.

Student number 30921.

Yoo Ji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