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P : I. 플라스틱의 유사

 

1. 미래

무엇을 미래라고 할 수 있을까? 언제부터를 미래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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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이 가지고 있는 심상의 절대량이 모두 소진되면 사물은 변모를 꾀하기 시작한다. 살아남기 위해 다른 방식을 찾는 것이다. 그렇게 어떤 사물은 추상명사가, 어떤 사물은 분류가, 어떤 사물은 유적이 된다.

피라미드는 만들어질 때 무덤 혹은 천문대 혹은 제단이었다. 그러나 피라미드의 무덤, 천문대, 제단으로서의 역할은 수차례 주인과 기록이 바뀌며 천천히 소진되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피라미드는 탄생 목적에 해당하는, 나아가 그 목적에서 파생될 수 있는, 모든 심상을 소진해 어떠한 가능성도 남지 않은 순간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피라미드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 새로운 목적을 자신에게 부여했다. 그렇게 피라미드는 유적이 되었다.

 

2. 1996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지금 보고 있는 화면부터 시작해 마우스, 키보드, 볼펜, 책상, 벽지, 바닥, 입고 있는 잠옷까지 주변 모든 것이 플라스틱이다. 얼마 전에는 작업실에 새 플라스틱 슬리퍼도 사다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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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우리가 해산물, 미세먼지, 식수 등을 통해 일주일에 신용카드 한 장 분량의 플라스틱을 섭취하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둘러싸이는 것을 넘어 이제는 플라스틱에 감염되어가고 있다. 곧 있으면 플라스틱을 함유하지 않은 사물이 없는 세상이 올 것만 같다. 아니면 이미 플라스틱을 함유하지 않은 사물은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만약 모든 사물이 플라스틱을 함유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나의 감각은 플라스틱으로 된 나의 손끝과 플라스틱으로 이뤄진 물체 간의 척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플라스틱인 나는 내가 감각하는 플라스틱을 전기 신호를 통해 내 뇌 속에 있는 플라스틱으로 전달할 테고, 뇌 속 플라스틱 간의 마찰로 생성된 감각에 대한 생각은, 플라스틱으로 이뤄진 손끝을 통해 플라스틱 키보드로 플라스틱 모니터에 입력할 것이다. 이렇게 하나 확실해 지는 것은 내가 플라스틱을 입력받고 플라스틱으로 출력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3. 아크릴 물감

1953년, Politec 사의 Politec Acrylic Colors가 출시된 이래 70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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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동시대 회화를 하는 사람으로서 여전히 유화를 사용하는 것이 동시대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아크릴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물감은 아크릴로 바꿨는데,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 뭔가 흥미로운 변화를 찾지는 못했다.

그래도 나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에 대해 흥미로운 생각이 하나 있었다. 그건 아크릴 물감으로 캔버스에 그리는 것은 결국 아크릴화가 유화를 지향하는 유사quasi 유화에 불과함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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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플라스틱만을 감각하는 환경에서 플라스틱을 입고, 플라스틱을 흡입하며, 플라스틱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캔버스만큼은 플라스틱이 아니다. 그래서 플라스틱에 그려 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플라베니아corrugated plastic sheets 위에 아크릴로 그림을 그렸다.

 

4. 플라스틱 라탄무늬 휴지통(1)

얼마 전, 다이소Daiso에서 새 작업실에 둘 쓰레기통을 샀다. 그 쓰레기통의 제품명은 ‘플라스틱 라탄무늬 휴지통’이었다. 제품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 주는 이 제품명에 대해 더 면밀히 고민해 보자.

플라스틱은 그 이름에 걸맞게 ‘원하는 모양’†이라는 궁극의 탄생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 원하는 모양을 위해 플라스틱은 유연하며, 형태를 쉽게 변형할 수도 있고, 세포를 아주 미세한 정도까지 쪼갤 수도 있다. 플라스틱은 이런 특성을 이용해 최대한 원하는 모양에 알맞은 방식으로 성형되어 태어난다.

어쩌면 원체에 해당하는 원하는 모양에 가깝게 태어난 플라스틱일수록 성공한 탄생을 한 것으로 간주할 수도 있겠다. 반대로, 원하는 모양과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그 플라스틱은 가격이 저렴해지곤 하는데, 이런 경향을 보면 탄생한 플라스틱이 원하는 모양에 적합하지 않을수록 성공하지 못한 탄생을 한 것이라 봐도 무관할 것 같다.

 

† 위키피디아 "플라스틱" 문서 참조, 방문일 2021.3.31., https://ko.wikipedia.org/wiki/플라스틱.

 

 

5. 플라스틱 라탄무늬 휴지통(2)

외견상, 플라스틱 라탄무늬 휴지통은 휴지통으로서는 성공했지만, 라탄무늬로서는 그다지 성공하지는 못한 듯하다. 휴지통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는 충분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반면에 라탄이라고 하기에는 그 모사가 조야한 면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라탄무늬 휴지통처럼 설계하고 성형해야 성공적인 플라스틱 라탄무늬 휴지통의 탄생이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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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9…은 1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건 매우 쉽다. 1에서 0.999…를 빼면 0.000…이 되고 0.000…=0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등식에 플라스틱 라탄무늬 휴지통을 대입해 보자. 만약 플라스틱을 세포 단위까지 가공해 진정 섬유질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형태로 만들고, 장인 같은 면모가 돋보이는 패턴으로 직조하고, 그 라탄으로 정말 휴지통다운 휴지통을 만들어 ‘이것은 누가 봐도 라탄 휴지통’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휴지통을 만들었다고 하자. 하지만 그래도 그건 플라스틱이다. 이 이상으로 아무리 공을 들여 플라스틱으로 라탄 휴지통과 똑같은 플라스틱 라탄무늬 휴지통을 만들었다고 한들 이 휴지통의 제품 태그에는 폴리에스테르 또는 폴리우레탄 또는 아크릴이라고 적힐 수밖에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플라스틱은 라탄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은‡ 실제로는 성립되지 않는다. 플라스틱의 형상에서 라탄의 형상을 뺀 값이 아무리 0이라 할지라도 안타깝게도 그건 라탄이 아니고, 플라스틱이다.

 

‡ P=플라스틱, L=라탄

 

6. 플라베니아

플라베니아는 캔버스의 대체품이다. 여느 대체품에 대한 편견이 그렇듯 플라베니아도 캔버스만큼 그 역할을 잘 수행하진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플라베니아의 다른 이름은 방수 골판지waterproof cardboard다. 그리고 아크릴의 용매는 물이다.

플라베니아의 표면에 남는 것은 플라스틱이 아니라 물이다. 플라베니아에 올라간 아크릴은 플라베니아에 안착하지 않고 물방울이 되어 그 모양으로 마른다. 그나마 함께 섞여 있는 아크릴 물감의 접착제가 물방울을 조금이나마 붓의 방향대로 남게 도와줄 뿐이다. 내가 플라스틱을 플라스틱에 출력한 결과물은 플라스틱으로 표현된 물일 뿐, 플라스틱이 아니다. 여기 물의 흔적만 남는 것이 어쩌면, 이 방식으로는 내가 완벽한 플라스틱 입출력 장치가 될 수 없다는 현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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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의 가소성plasticity은 원체의 더 정확한 모방을 위해 만들어진 특성이다. 즉, 플라스틱의 가소성을 부각하는 것은 플라스틱이 대체품이라는 사실을 부각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원래 캔버스의 대체품으로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 플라베니아가 화지로 사용될 때, 자연스레 캔버스의 대체품으로 인지되는 것은 플라스틱이 가지고 있는 가소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작용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봐야 한다.

가소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플라베니아를 캔버스의 대체품으로 보게 한 것이라면, 반대로 유화의 화지로 캔버스를, 먹의 화지로 종이를 사용하듯이 아크릴화의 화지로 플라베니아를 사용하는 것이 이치라고 바라보는 것도 옳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바라본다면, 플라베니아를 아크릴화만의 화지로 견고히 하는 것은 플라베니아를 대체품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는 한 가지 방식이 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물방울의 질감이 너무도 강한 이 화면의 특징은, 플라베니아의 한계가 아니라, 플라베니아만의 고유성이 될 수 있다.

 

7. 유사의 굴레

플라스틱은 가소성과 이에서 비롯한 대체품의 굴레에서 자신의 잠재성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플라스틱이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그들의 잠재성은 바로 영원한 삶이다.

100세 시대에 해당하는 나의 입장에서 볼 때, 500년간 썩지 않는 플라스틱은 영원한 것이다.

태초의 플라스틱은 약 160년 전 탄생했다. 그리고 그 플라스틱의 자연 분해는 약 340년 뒤에나 시작될 예정이다. 그러니까 내가 죽어서 내 육체가 미세 플라스틱만을 남기고 모두 사라지더라도 그 플라스틱은 건재하고 있을 것이란 말이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500년의 수명을 가진 두 재료가 회화가 되어 결합하는 방식은 너무도 나약하다. 물방울만 남는 화면에 그림을 열심히 그리고 있으면 손톱만 스쳐도, 또는 먼지만 닦아도, 지워질 걸 아는데 왜 이렇게 열심히 그리고 있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재료의 영속성과 반대로 매우 나약한 이 특징 또한 플라스틱 회화만의 고유성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21. 5. 10.

 

P : II. 플라스틱의 영생

 

1. 556의 컬러 수납장

요시자키 미네의 애니메이션 <개구리 중사 케로로(ケロロ軍曹)>에는 ‘우주탐정 556(일명 556)’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556은 지구에서 우주의 평화를 지키고 싶어 하는 히어로 지망생이다. 우주평화와 관련된 일만을 찾아다니다 보니 때문에 556은 극도의 빈곤에 시달리는데, 이러한 와중에 그가 생계를 영위할 수 있게 돕는 물건이 있다. 그건 바로 컬러 수납장이다.

556은 컬러 수납장을 수납장의 용도를 넘어 의자, 책상, 조명, 심지어 라면 받침, 라면 냄비로 사용한다. 컬러 수납장을 수납장 이상의 용도로 확장시키면서 그는 컬러 수납장이라면 세상 모든 물건의 대체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다. 컬러 수납장의 기능에서 무한에 가까운 가능성을 본 것이다. 그리고 이 무한에 가까운 가능성은 일종의 신앙으로 변모해 556은 작중에서 광적으로 컬러 수납장을 수집한다. 그에게 컬러 수납장을 모으는 이유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오직 컬러 수납장의 집적만이 중요한 의미가 되었다. 그는 번 돈의 전부를 컬러 수납장을 사는 데 사용하고, 모든 활동의 대가를 컬러 수납장으로 돌려받는다.

556의 이 맹목적인 신앙이 허무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의 신앙은 결과적으로 세계를 여러 번 구한다. 컬러 수납장으로 미사일 버튼을 봉인하기도 하고, 우주 범죄자를 유인하기도 한다. 또한 컬러 수납장에서 구출한 괴수는 556과의 추억으로 마음이 움직여 지구 파괴를 멈춘다. 556도 잊고 있던 컬러 수납장을 모으기 시작한 이유가 그도 모르게 발현해 그의 자아실현을 도운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어떤 생각으로 기획을 시작했는지를 잊어버리더라도 그 기획만이 살아남아 계승되고 축적된다면 처음에 생각했던 방법이 아니더라도 결과적으로 그 처음의 생각은 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556의 영웅 서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적 결론은 어쩌면 성공적이지 못하게 태어난 수많은 플라스틱, 혹은 꿈에 그리는 원체가 될 수 없는 모든 플라스틱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내가 이 플라스틱에게 무한의 노력을 가해 플라스틱이 진정 원체가 되는 기적을 행한다면, 그게 플라스틱에게 더 귀감을 줄지도 모르겠다.

 

 

2. 플라스티컬 라이프

세상에 썩은 플라스틱은 없다. 잘게 갈려 우리의 세포 사이사이에 끼어 들어가 있지만 플라스틱은 썩지 않는다. 반대로 플라스틱의 틈새로 유기체가 들어가 생장하고 죽어 사라지더라도 플라스틱은 썩지 않는다. 플라스틱이 썩기 시작할 때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

이처럼 끈질긴 플라스틱의 생존력과 불친화성은 플라스틱이 라탄이 되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기체의 시체인 라탄은 썩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물을 흡수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와 같은 흡수로 라탄은 썩을 수 있는 가능성을 키워나간다. 썩기 위해 흡수하고, 썩어 없어지는 것이 곧 라탄이 라탄이라는 증거가 된다.

화지로 사용되는 사물들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이유 또는 작용을 통해서건 간에 화지는 화지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도료를 흡수한다. 그리고 이렇게 흡수해 변하는 과정이 화지를 화지로 만든다.† 물론 플라스틱의 탄생 과정에 이와 같은 흡수를 통한 형질의 변형이 필수적으로 동반하기는 한다. 그러나 이미 만들어진 플라스틱이 다시금 재료가 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플라스틱의 불친화성은 플라스틱을 다른 플라스틱으로 변화시키는데 큰 문제점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플라스틱이 불친화성을 거절한다면, 그것은 또 플라스틱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는 것이 아닌가? 역설적이게도, 이미 탄생한 플라스틱은 플라스티컬plastical‡하지 않아야 플라스틱이 될 수 있다.

 

† 또 다른 예시로 금속의 가공에 있어 강한 열은 두 개의 다른 금속의 분자 구조를 변형시킨다. 열로 인한 분자 구조의 변형은 곧 재료로서의 금속을 금속답게 만든다.

‡ 여기서의 plastical은 "가소성이 좋은"과 비슷한 뜻으로 사용된다. (≒malleable)

 

3. 액자

플라스틱 라탄무늬 휴지통을 산 곳에 다시 한 번 갔었다. 다른 거 살게 있어서 갔는데, 마침 거기에 액자처럼 보이는 게 있었다. 그게 액자는 아니었고, 플라스틱 그릇이 뒤집어져 있던 거였는데 참 액자 같아서 세 개 사다가 그림을 그렸다. 그 플라스틱 그릇은 분명 다른 질감의 그릇에 기인해 만든 그릇이었을 것이다. 아마 유리나 양철로 된 필기구 혹은 집기류 그릇이 원체였을 것 같다. 이렇게 쉽게 무엇이 원본이었는지 파악할 수 있는 사물을 왜 나는 그 원본과 생판 다른 사물의 파생체로 인식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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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점은 세 가지다.

1.

플라스틱 그릇을 액자라고 봤다면 플라스틱 그릇의 원본은 그릇인가? 액자인가? 만약 액자라면 파생체의 원체가 무엇인지는 파생체를 판단하는 순간에 결정되는 것일까?

2.

플라스틱 그릇으로 태어났지만 그릇으로서보다 액자로서의 기능이 우세하다면, 그것은 그릇으로서 태어나는데 비교적 실패한 것이라 볼 수 있는가?

3.

나아가 그릇으로 태어나는데 비교적 실패한 플라스틱 그릇이 액자로서 성공한다면 이 성공은 플라스틱 그릇을 ‘X-그릇’의 파생체라는 조건에서 탈피시켜 또 다른 플라스틱으로 나아가게 만든 행동이 되는 것일까?

 

4. 파생체

플라스틱 라탄무늬 휴지통은 파생체다. 여기서 ‘파생체’란, 어떤 원리로든 원본에 해당하는 사물을 가지고 있는 사물을 통칭한다. 예를 들어, 핀 압정 모양 자석은 핀 압정에서 파생한 사물이기에 핀 압정 모양 자석을 핀 압정의 파생체라 지칭할 수 있다. 또한 2017년, 내가 유심히 관찰했던 ‘모형키위’또한 키위에 기원을 둔 파생체이다. 파생체의 범주는 이보다 더 확장될 수도 있는데, 예를 들어 프랑시스 퐁주Francis Ponge,1899~1988의 『사물의 편le parti pris des choses』에는 <과일상자>라는 시가 있다. 이 시에서 언급하는 ‘과일상자cageot’는 ‘새장cage’과 ‘감방cachot’의 중간쯤에 그 언어적 근원을 두고 있다. 그렇기에 단어로써 ‘과일상자’는 파생체라 할 수 있다. 또한 나는 2018년에 <철제오브제>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이 프로젝트의 대상인 ‘철제오브제’는 그 형태적 근간을 사슴에 두고 있는 파생체이기도 하다.

이렇게 파생체의 범주를 확장해가다 보면 결과적으로 파생체의 범주를 이루는 명제는 “원본이 있는, 혹은 그렇다고 볼 수 있는, 모든 사물”이 된다. 더불어 파생체의 범주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원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사물의 범주 또한 자동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갖는다. 파생 관계에서 원본에 해당하는 사물을 지칭할 수 있는 방식이 다양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선 예시에서 나는 파생체와 원본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원본’이라는 단어 외에 ‘기원’, ‘근원’, ‘근간’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외에도 ‘태고’, ‘원관념’, ‘모티프motif’ 등이 원본을 지칭하는 단어가 될 수 있다. 이처럼 파생의 방식에 따라 그 원본을 지칭하는 단어는 변형되기 마련이고, 파생체의 범주가 넓어짐에 따라 원본을 지칭하는 단어도 다양해진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원본의 확장된 개념으로써, 파생체와 대립하는 형태의 단어로 ‘원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로 한다.

 

5. 플라스틱

대체품으로 태어난 플라스틱을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회화로 바꾸는 것이 이번에 해야 할 일이다. 어쩌면 이 활동은 플라스틱을 파생체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자유를 쥐여 주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대체품으로 태어난 플라스틱은 대체품으로서의 목적을 충실히 행하는 것이 곧 탄생 목적이다. 그러나 그 목적을 위해 플라스틱이 취한 가소성은 되려 플라스틱을 플라스티컬plastical‡ 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렇게 플라스틱은 어떻게든 자신의 위치를 고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인위에 의해 타고난 고정하기 위한 노력은 파생체로서의 플라스틱의 위치를 견고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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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가 견고해진 플라스틱은 곧 파생체의 부분집합이 된다. 이렇게 파생체로 태어나 파생체의 심상을 견고히 하는 플라스틱의 생애에는 아직 탈출구라 볼 수 있는 것이 없다.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플라스틱의 자유를 향한 탈출구는 앞으로 적어도 340년이 흘러야 등장한다. 하지만,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기구한 플라스틱의 생애에서 파생체라는 꼬리표를 지울 방법은 무엇인가 할 때, 우리는 이미 답을 찾았었나?

 

‡ 여기서의 plastical은 "가소성이 좋은"과 비슷한 뜻으로 사용된다. (≒malleable)

 

 

6. 소진된 인간

우리의 몸은 점점 플라스틱으로 대체되고 있다. 플라스틱에 둘러싸인 것을 넘어 집어 삼켜지고 있는 것이다. 플라스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점점 플라스틱에 이입이 되는 것은 오직 플라스틱으로 오래 보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내 몸이 플라스틱으로 대체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파생체인 플라스틱으로 변해가고 있는 나는 어쩔 수 없이 어디에 원본을 두고 있는지 모르는 파생체인 사물이 되어가고 있는 수순에 있다.

2021. 6. 12.

P:I. The Quasi-production of Plastic

 

1. Future

What can be called the future? And since when is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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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exhausting the absolute amount of the inherent impression sense of an object, it begins to mutate. In other words, it begins to find a different way to survive. So some things remain by becoming abstract nouns, classifications, or relics.

Pyramids were built as a tomb, observatory, or altars. However, the pyramids' role as a tomb, observatory, and altars was slowly exhausted with several changes in owners and recordings. At one point, pyramids would have experienced exhausting all roles of images that were applicable to the purpose of birth and that were derived from images of the purpose. Moreover, pyramids had reached a moment there was no possibility left. At this status, pyramids gave themselves a new purpose in order to continue their lives. That's how pyramids became antiquity.

 

2. 1996 When they dominated the Earth

From the monitor I am looking at now to the mouse, keyboard, ballpoint pen, desk, wallpaper, floor, and pyjamas I am wearing, everything around is plastic. And a few days ago, I also bought new plastic slippers for my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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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few years ago, I saw an article that said most people were intaking one credit card’s amount of plastic a week through seafood, fine dust, and drinking water. Beyond being surrounded, our bodies are now encroached on by plastic. Sooner or later, a world without things not to contain plastic is likely to come. Or things that don't contain plastic may already not exist in the world.

Let’s suppose all is containing plastic. Then it is possible to say that my sense is the repulsion force between my fingertips containing plastic with plastic objects. Then I, as plastic, will transmit the sense from plastic through an electrical signal made by plastic into my brain. And the idea, made by the friction between the plastic in my brain, about the sense will be inputted into the plastic monitor through my plastic fingertips. In this process, one thing I can be clear about is that I am playing the role of inputting and outputting plastic.

 

3. Acrylic Paint

Seventy years or more have passed since the launch of Politec Acrylic Colors in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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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day I thought that a contemporary painter still using oil painting was not contemporary. So I started painting with acrylic last year. But, although the paint changed to acrylic, I didn't find any interesting changes in using new paint.

However, I had one interesting idea about why I didn't feel any interesting change. It is whether painting on canvas with acrylic proves that acrylic painting is nothing more than a quasi oil painting aiming for oil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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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wearing plastic, inhaling plastic, and painting with plastic in an environment feeling only plastic. But a canvas is still not plastic. So I decided to draw it on plastic. This time, I painted acrylic on a surface of plastic cardboard called Pla-veneer.

4. Plastic Rattan Trash-can (1)

Not long ago, I bought a trash-can at Daiso† to use in my new studio. And the product name of this trash-can was “Plastic Rattan Trash-can.” Think more closely about this product name, which shows the definite identity of this product.

To the worth of its name, plastic has the ultimate purpose of birth, as “the desired shape‡.” For its desired shape, plastic is flexible, easily malleable, or even able to cleave cells to a very fine degree. Plastic is moulded using these properties to fit as much as possible into the desired shape.

Perhaps the more plastic that was born close to the desired shape corresponding to the original, the more successful it could be considered to be. On the contrary, the larger the difference from the desired shape, the cheaper the plastic becomes. As watching that trend, it is possible to say that the more plastic is not suitable for the desired shape, the less successful the birth is.

† home goods store like Poundland in the UK

 Korean Wikipedia describes “Plastic” as ‘It can be easily processed into desired shapes.’ visited 31st Mar. 2021, https://ko.wikipedia.org/wiki/플라스틱.

 

5. Plastic Rattan Trash-can (2)

To all outward appearances, the plastic rattan trash-can seems to have succeeded as a trash can, but not rattan-patterned. While it has enough form to function as a trash-can, its imitation is lacking in being called rattan. Then, to be said to be born as a successful plastic rattan trash-can, how much designing and moulding like rattan is necess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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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is very easy to prove that 0.999… is 1. Because 1 minus 0.999… becomes 0.000… and 0.000… is 0. Then put a plastic rattan trash-can in this equation. And let’s say that plastic is processed to the cell unit to make it into a form that can only be called a true fibre, weaved in a pattern that stands out like a craftsman, and using that to make a trash-can that, of course, it can only be called a rattan trash-can. Nonetheless, it is just plastic. No matter how much effort someone puts into this, even if a plastic rattan trash-can was made just like a rattan trash-can, there is no choice only to write polyester, polyurethane, or acrylic on the product tag of this trash-can. No matter how hard you try, plastic cannot be a rattan. 

So                † is not correct in reality. No matter how zero the plastic minus the rattan figure, unfortunately, it's not rattan, just plastic.

† P=plastic, L=rattan

 

6. Pla-veneer

Pla-veneer is a replacement for canvas. Like any prejudice against replacement products, Pla-veneer was unlikely to perform its role well, rather than canvas. And so it was in reality. Pla-veneer's other name is waterproof cardboard. And the solvent of acrylic is water.

It is only water, not plastic, to remain on the surface of Pla-veneer. Acrylic on top of Pla-veneer does not settle in Pla-veneer, but it becomes droplets of water and dries in its shape. The adhesive in acrylic paints will only help to leave droplets in the direction of the brush. The result of outputting plastic on plastic is water expressed by plastic, not plastic. The only traces of water left here, perhaps, in this way, seem to indicate the reality that I cannot become a perfect plastic input/output dev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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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lasticity of plastic is a property created for the more accurate imitation of the original. In other words, highlighting plasticity stands out the fact that plastic is a replacement. So we need to have some doubt about that when Pla-veneer is used as a canvas, even though knowing that Pla-veneer was not originally made as a replacement for canvas, whether the reason we indicate the Pla-veneer as a replacement for canvas is because of a stereotype about the plasticity of plastics.

On the contrary, if the stereotype of plasticity has led to Plaveneer as a replacement for canvas, it would be fair to say that it is reasonable to use Plaveneer as a drawing board, like linen for oil painting and paper for ink painting. On this stance, making sure Pla-veneer is an ideal drawing board for acrylic painting could be one way to free Pla-veneer from its identity as a replacement. Then the characteristic of this drawing board which has such a strong texture of droplets can be the uniqueness of Pla-veneer, not the limitation of Pla-veneer.

 

7. The Fetters of Quasi

Plastic could not show its potential due to the fetters of plasticity and replacement arising from it. And none other than eternal life is the potential that plastic is not looking at.

From my viewpoint, as a member of the generation that is expected to live to 100, plastic that doesn't rot for 500 years is an eternal thing. 

The first plastic was born about 160 years ago. And the natural decomposition of this plastic is not due to begin until about 340 years later. So even if I die and my body disappears, leaving only fine plastic, the first plastic will remain intact. Unfortunately, however, the way in which two materials with a 500-year life span are combined into paintings is too weak. Then, when I paint on Plastic-veneer with water droplets, I even wonder why I am drawing so hard even though knowing that it will erase just by rubbing nails or wiping dust. However, this very weak characteristic opposed to the permanence of the material could also be said as the uniqueness of plastic painting.

10th May. 2021

P:II. Immortality of Plastic

1. 556’s Color Cabinet

Yoshizaki Mine's animation Sergeant Keroro features a character called "Space Detective 556 (a.k.a. 556).” 556 is a hero aspirant who wants to protect the peace of the universe on the Earth. While seeking only things related to cosmic peace, he suffered from extreme poverty. But in this situation, there were things that helped him subsist. That is a colour cabinet.

556 used the colour cabinet, beyond its purpose, as a chair, desk, light, even a ramen stand, and a ramen pot. Expanding the purpose of the colour cabinet to more than just a cabinet, he had a hope that a colour cabinet would be a replacement for everything in the world. He saw the possibility close to infinity in the function of the colour cabinet. And this possibility turned into a kind of faith, so 556 collected colour cabinets fanatically in the animation.

 

For him, the reason for collecting colour cabinets was no longer important, but only the accumulation of colour cabinets had become important. He spent all of his money on colour cabinets and got paid for all his activities back by colour cabinets.

However, his reckless faith was not all in vain. Because his faith in colour cabinets saved the world several times as a result. He sealed missile buttons with a colour cabinet and attracted space criminals with it. Also, the monster rescued from a colour cabinet was so moved by the memories with 556, So it was stopped destroying the Earth. The reason he started collecting colour cabinets, although forgotten, was manifested and helped his self-realisation unknowingly. Perhaps even if forgetting the reason why a project started, if only the project survives and is inherited and accumulated, even if it's not the way I first thought, wouldn't the initial idea be expressed at the end?

This didactic conclusion from the 556’s hero story may be a little hope for a lot of plastic that did not become an original or was born unsuccessfully. Or if I put infinite effort into this plastic and do a miracle that plastic truly becomes the original, and it may be more exemplary to plastic.

2. Plastical Life

There is no rotten plastic in the world. It is finely ground and stuck between our cells, but plastic does not rot. Furthermore, plastic does not rot even if organisms enter the cracks of plastic and grow and die. There is still a lot of time until the plastic starts to rot.

This persistent plastic viability and incompatibility are also the reason why plastic cannot become rattan. Rattan, an organism's corpse, can absorb other objects because it can rot away. In other words, with this absorption, rattan increases the possibility of decay. Absorbing to rot and rotting away is proof that rattan is rattan.

The same goes for objects used as drawing boards. For whatever reason or cause, drawing boards absorb the paint to act as drawing boards. And this process of absorbing and changing makes drawing boards be drawing boards.† Of course, the process of plastic production is necessarily accompanied by deformation of the character through absorption. However, in a situation where plastic that has already been made is used as a material again, the incompatibility of plastic is a big problem in changing plastic into other plastic.

However, if rejecting incompatibility from plastic, doesn't it also deprive the identity as plastic? Paradoxically, plastic that has already been born can only be plastic when it is not plastical.‡

† As another example, in the processing of metals, strong heat changes the molecular structure of two different metals. The deformation of the molecular structure due to heat soon makes the metal a metallic material.

‡ (≒malleable)

 

3. Frame

Once again, I went to the Daiso where I bought the plastic rattan trash-can. I went just to buy something else, and there was something that looked like a frame. Actually, it was not a frame but a plastic plate lying upside down. It looked like a frame, so I bought three and drew on them. This plastic plate must have been made using a plate of a different material as a motif. Perhaps a glass or tin plate or a writing instrument or a kitchenware plate was the original. Then, why did I perceive an object that could be so easily identified the original as a derivative that has another original?

 

There are three ambiguous points:

1.

If seeing a plastic plate as a frame, is the original body of the plastic plate a plate? Or a frame? If the answer is a frame, is an original determined at the moment, identifying that what is an original of the derivative?

2.

If born as a plate but having a superior function as a frame over a plate, is it right to be relatively considered a failure to be born as a plate? 

3.

Furthermore, if the plate failing to be born as a plate succeeds as a frame, will this success be able to become the movement that the plate breaks away from the fetters of a derivative of a plate and progresses to another ego?

 

4. Derivative

The plastic rattan trash-can is a derivative. Here, the “derivative” refers to an object that has an object that corresponds to the original body or body in any fundament. For example, a pin-tackle magnet can be referred to as a derivative because it is an object derived from a pin tackle. Also, in 2017, the model kiwi, which I observed closely, is also a kiwi-based derivative. The category of derivatives can be expanded even further. For example, Francis Ponge (1899~1988)’s Le Parti pris des choses contains a poem called Fruit Box. The “cageot” mentioned in this poem has its linguistic origin in the middle between “cage” and “cachot.” Also, I worked on a project called The Metal Object in 2018. The project's subject, the “Metal object”, is also a derived thing of the deer's morphological foundation.

Expanding the category of derivatives, the resulting proposition of a derivative becomes "any object that has, or can be viewed as the original body or bodies.” In addition, in the process of expanding the derivatives’ category, the category of objects that can be considered as original bodies automatically expands. This is because there can be a variety of ways that can refer to the object corresponding to the original in the derivative relationship. In the previous examples, I used the words “base,” “origin,” and “foundation” other than the word “original” to describe the relationship between derivatives and the original. In addition, words such as “primitive,” “element,” and “motif” can be used to refer to the original. Like this, the words that refer to the original are modified according to the derivative way, and as the range of the derivative broadens, the words that refer to the original are also varied. In this circumstance, I chose the word “original body,” as an extended concept of the original, to use as a form of the word in opposition to the “derivative.”

 

5. Plastic

What I do in this project is to change the plastic born as a replacement into a painting made with plastic. Perhaps this activity can be said to be the movement that grants freedom to plastics from the bondage of a derivative.

For plastic born as a replacement, the purpose of birth is to faithfully serve as a replacement. However, plasticity taken by plastic for that purpose prevents plastic from being plastical†. Thus, plastic somehow tries to be stationary in its position, and the plastic’s effort to be inherently stationary artificially solidifies the position of plastic as a deriv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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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stic, which is positioned firmly, soon becomes a subset of a derivative. In the lifecycle of plastic, which is born as a derivative and strengthens the image of the derivative, there is nothing yet to be seen as a way out. An escape-way to the freedom of plastic, which can occur naturally, will not emerge until at least 340 years later. However, when asking how to remove the label of derivative from the hapless life of plastic from the human perspective, have we already found the answer?

† (≒malleable)

 

6. The Fatigued Human

Our body is slowly being replaced by plastic. Beyond being surrounded by plastic, it is being swallowed up. Talking about plastics, the reason why I increasingly empathise with plastics maybe not only be because I have been looking at them for a long time, but also because my body is being replaced by plastics. I, who am changing into plastic as a derivative, am in the process of becoming an object that can unavoidably not know where the original is.

12th Jun.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