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 I. 리스트와 기록
0. 리스트
리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리스트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 기준은 제목이 있는지 혹은 없는지이다. 다음은 가장 최근에 사용한 ‘살 것들’ 리스트의 일부이다. 이 리스트를 예로 들어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 살 것들
1. 달걀
2. 파
3. 충전기
4. 우산
5. 우유
6. 핸드폰케이스
7. 120g A4용지
이 리스트는 ‘살 것들’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이 제목으로 인해 리스트 내 항목들은 ‘장 봐야 하는 것’들이라는 주제 아래에 묶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리스트에서 ‘살 것들’이라는 제목을 지운다면, 이 항목들이 묶여있는 이유는 유추만 가능하다.
1. 달걀
2. 파
3. 충전기
4. 우산
5. 우유
6. 핸드폰케이스
7. 120g A4용지
우연히 살 것들 리스트라는 것을 유추해낼 수도 있겠으나, 그밖에 이 리스트는 지금 눈앞에 있는 것들, 버릴 것들, 이사 박스에 담겨진 것들이라는 주제를 공유하는 리스트로 유추될 수도 있다. 좀 더 이 이야기를 이어가 보면, 리스트에 부여한 제목은 리스트가 가지고 있는 감각을 결정하거나 바꿀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동물원에 있는 동물 리스트를 작성하고, 이 동물 리스트에 <술라웨시 섬 동굴벽화에 그려진 것들>이라는 제목을 붙인다면, 이 리스트는 기존과 다른 감각을 전달하게 된다.
- 술라웨시 섬 동굴벽화에 그려진 것들
1. 멧돼지
2. 말
3. 소
4. 사슴
내가 지금까지 제작한 리스트들도 마찬가지로 어떤 제목을 붙이는지에 따라 천차만별로 그 감각이 변할 수 있다. 나의 리스트는 한 대상을 공통 주제로 갖는 파생체, 즉 작품들의 모음이다. 그리고 이 작품 모음과 주제가 갖는 관계는 ‘살 것들’ 리스트 내의 항목들과 ‘살 것들’이라는 제목이 갖는 관계와 거의 같다. 제목이 없다면, 항목들이 주는 감각을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공통 주제, 즉 제목이 항목들에 주는 영향이 그만큼 크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반대로 그만큼 항목들 간의 관계가 정말로 단단하게 결합하고 있는지를 의심해 봐야 하는 대목이다.
-
나는 지금까지 제작한 리스트들을 항목으로 갖는 리스트를 제작하기 위한 준비 단계에 있다. 그리고 현재 이 리스트들을 항목으로 갖는 리스트 제작의 목적은 대상과 작품의 관계성을 찾는 것이다. 지금까지 만든 리스트들은 원체와 파생체 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과정으로서 제작되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만든 리스트로 새로운 리스트를 만드는 데에 있어서 지금까지 리스트를 만들던 목적과 같이, 파생의 원인을 찾는다는 목적, 다시 말해 대상과 작품의 관계성을 찾는 목적을 재고해본다는 건 그리 어려운 접근 방식이 아닐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동일한 요소로 이뤄진 리스트라 할지라도 제목에 따라 쉽게 요동치는 리스트 내 항목들 간의 헐거운 관계성은 과연 지금까지 내가 리스트를 통해서 하려 했던 이야기들이 진정으로 전달되고 있었던 것인지 의문을 품게 했다. 나는 앞서 언급한 파생 관계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유사quasi에 대한 이야기, 회화에 대한 이야기, 소장에 대한 이야기 등을 무리 없이 리스트에 부여해왔다. 리스트는 어떻게 명명하느냐에 따라 쉽게 목적을 변경한다. 심지어 나는 단순히 ‘지금까지 만든 리스트들’ 이라는 제목으로도 이 리스트들을 묶을 수도 있다.
-
내가 북한산을 그려도, “이 그림은 북한산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라고 선언하지 않는 이상, 북한산을 그린 그림은 북한산이 아니다. 제목을 정해주는 나의 선언은 지금까지의 내 작품 제작에 있어 가장 핵심 역할을 맡아왔다. 내가 하는 작업은 아무리 열심히 그렸다 할지라도 리스트를 통한 선언이 없다면, 작업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L:I. List and Recording
o. List
I will talk about a list. A list can be divided into two different types. The main criterion of this division is whether a list has a title or not. Let’s start the story with the following list.
-
What I will shop
-
Eggs.
-
A bunch of spring onions.
-
Battery charger.
-
An Umbrella.
-
A pack of milk.
-
Mobile case.
-
120g of A4 paper.
This list has the title named What I will shop, and the items in this list can be linked under the same theme through this title. However, If erasing the title name, we can only estimate the reason for linking these.
-
Eggs.
-
A bunch of spring onions.
-
Battery charger.
-
An Umbrella.
-
A pack of milk.
-
Mobile case.
-
120g of A4 paper.
Fortunately, we can find out this list’s title is What I will shop, but the theme of this list would be assumed as What is in my sight, What I should waste, or What was put into a box for moving. Progressing this story, a title granted to a list can change or determine the feeling of a list and the items in a list. For example, If I make the list of Animals in the zoo and name the title, The Animals on the cave paintings of Sulawesi Island, this list will deliver the sense that differs from an original theme.
-
The Animals on the cave paintings of Sulawesi Island
-
Boar.
-
Horse.
-
Cow.
-
Deer.
Likewise, the lists' senses that I have produced until now can be changed by naming those in infinitely variety. My lists are the groups of derivatives that have shared the original subjects or bodies, that is, the groups of the works. Thus, in some points, the relationships between those groups of my works and those subjects are like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items in the list of What I will shop and the title What I will shop. In other words, If there are no names, the sense which the relationship of items in a list exhales cannot be limited. Although probably, we could say the shared theme, that is, the title of the list influence on each item as much as that. On the other hand, we should have a question whether the items in the list are validly related (or connected) to each other as much as that.
-
Now, I am standing on the preparing stage to produce the list having my past lists as the items, and the purpose of making this upper list is to figure out how objects relate to artworks. The lists made until now are produced for the purpose of realising the relationship between an original body and a derivative. Therefore, I expected that on producing the new list with the established lists, to reconsider the purpose to find the relationship between objects and artworks, like the aim of the established lists, namely the purpose of finding out the cause of deriving, is not a complicated method of approach.
However, on the other hand, I wondered if the tenuous relationship between the items in the lists had shown what I actually wanted to say because the sense of the items in the lists can be easily shaken by the title. Apart from the mentioned story, I gave my lists the stories about Quasi, Painting, Collecting, not only about deriving. A list easily changes its goal through how it is named. Even I can tie up my whole list under the name, the list I made until now.
-
When I draw the Buk-han Mountain, if I do not declare that “this painting intimately related to the Buk-han Mountain,” the thing drawn on the screen is not the Buk-han Mountain. So my declaration giving the name or title has played a core role in my work process by this time. Thus, I can say that my works without the declaration through the list cannot do the role as artwork, even how much I threw my heart and soul into the works.
1. 기록자
4만 5천 년 전, 술라웨시섬에 살던 한 기록자는 자신이 본 것 혹은 느낀 것 혹은 누군가의 전달 사항을 기록했다. 그가 기록한 이 기록물은 현존하는 문자와 그림의 기원 중 가장 오래된 기록물이다. 이후 긴 시간 동안 기록은 문자와 그림, 두 분야로 서서히 양분되었다. 그리고 역사가 발전함에 따라 문자와 그림에 부여된 각자의 역할은 더욱 명확해졌다. 더 나아가 문자와 그림은 각자의 역할을 더 세분화시켜 다양한 하위 학문들을 만들어나갔다. 결과적으로 문자와 그림은 완전히 다른 성격의 두 개의 학문이 되어 원시적 형태의 기록자를 역사에서 몰아내고, 서기와 화가라는 전혀 다른 두 전문가를 원시적 기록자의 위치에 세웠다.
18세기, 인문과학의 근대화는 서기에게 말하기의 역할을, 화가에게 그리기의 역할을 부여하며 서기와 화가를 완벽히 결별하게 했다. 그리고 근대화의 영향이 전 지구로 확장되며 지구에 남아있던 원시적 형태의 기록자들은 모두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한국도 근대화로 인해 원시적 형태의 기록자 상당수가 사라진 사회 중 하나이다. 근대화 이전 한국 사회의 정신을 지탱하던 직업은 선비였다. 선비는 원시적 형태의 기록자로서 그 증거는 선비임을 입증하는 방법이 시서화(詩書畵)에 능통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는 점에 있다. 선비에게 시서화는 애당초 분리된 것이 아니라, 삼절(三絶)이라는 이름 아래에 같은 활동이었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좋은 서체를 가지고 있어야 했고,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와 같이 현재 분화된 문화 매체가 기원을 동일시하는 모습은 비단 한국의 선비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은 아니다. 지역을 막론하고 문자의 원형이 그림에서 파생했다는 점, 선사시대 시가무(詩歌舞)가 같은 활동이었다는 점 등을 기록을 통해 쉽게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 장르들을 완벽히 결별시킨 인문과학의 근대화 영향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모든 매체는 한 분야의 하위 장르로 그 역할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한자 문화권은 현재까지도 언어적으로 서기와 화가를 기록의 분과로 엮고 있는 사회에 해당한다. 이는 한국어에서 서기의 ‘서(書)’자와 화가의 ‘화(畵)’자가 붓 ‘율(聿)’자를 공통 부수로 사용하고 있음을 통해 알 수 있다. 어쩌면 역사의 흐름에 따라 전 지구적으로 서기와 화가가 분리되는 현상이 이뤄져 왔음에도 비교적 최근까지 동아시아 사회가 그 둘을 완벽히 분립시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마 동아시아 사회 내에서는 두 분야 사이에 붓을 사용하는 작업이라는 물리적 공통점이 존재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개인이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짧은 기간 만에 근대화가 발생한 사회이기에 서기와 화가의 완벽한 분립을 아직 어색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2. 흰 그림
2017년, 나는 <흰 그림>이라는 제목의 자화상을 한 점 그렸다. 그 자화상은 초상화이자 추상화로, 어느 시점부터 그림을 추상화라 부를 수 있을지를 실험하는 목적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2021년, 우연히 그 그림을 다시 마주했다. 다시 본 자화상은 기록해 둔 사진과 비교해 볼 때, 더는 흰 그림이라고 말하기 민망하게 오줌 색으로 변색되어 있었고, 물감이 튄 자국들과 먼지들로 인해 처음에 그렸을 때와는 전혀 다른 그림이었다. 의외로 이 그림은 자화상보다 풍경화에 가깝게 느껴졌다. 실제로 풍경화라고 말하면 충분히 타당하게 느껴질 것처럼 보였다.
내가 하는 미술은 너무도 나약하다. <0. 리스트>에서 이야기한 리스트 내의 요소들 사이 나약한 연결고리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이런 경험은 여럿 있었다. 바로 이전 작업 <<플라스틱 라탄무늬 휴지통>>의 <접시 그림>에서도 마찬가지의 경험이 있었다. <접시 그림>에서 나는 “내가 접시를 액자라고 봤다면, 그것은 액자인가, 접시인가?’ 하는 질문을 품었다. 또한 직장인에 대한 작업을 할 때도 아포칼립스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뤄서, 솔직히 나는 이 작업이 과연 직장인에 대한 작업인지, 아포칼립스에 대한 작업인지 확실히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그 전의 ‘철제 오브제’와 관련한 작업은 애초에 나약한 작업과 작품 사이의 경계를 노리고 진행한 작업이었다. 그렇게 몇 번이고 마주했던 명명하기에 의한 작업물의 변화를 또다시 경험했다. 재현은 너무 나약하다. 알파벳 a의 기원은 고대 이집트의 히에로글리프(신성문자)의 물소 얼굴 모양의 문자가 페니키아 상인들에 의해 변형된 것이다. 이집트인에 의해 재현된 물소는 현재 알파벳 a가 되었다. 그러나 a는 물소도, 당연 [aː]도 아니다.
재현은 왜 행해지는 것이며, 재현된 형상이 보여주는 것과 재현 대상 간의 차이는 뭐라고 설명하는 것이 옳을까? 이번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이미 너무 많은 재현의 사건이 일어났다. 병풍의 재현, 도자기의 재현, 선비의 재현, 흰 그림의 재현 그리고 흰 그림을 모사하는 데에서도 자화상의 재현, 추상화의 재현, 캔버스의 재현, 풍경화의 재현. 어쩌면 이렇게 많은 재현이 발생한 까닭은 ‘재현’이라는 단어가 너무 많은 단어를 하나로 퉁치는 단어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재현은 영어로 revival, reappearance, reemergence, readvent, reproduce, repeat, reenact, recycle 그리고 reborn 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 이 많은 단어를 한 단어가 통칭하고 있다는 것은 뭔가 이상하다. 과거 한 번역가의 안일함으로 지금 내가 헷갈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히에로글리프
수소 머리
셈조어
수소 머리
페니키아 문자
알레프
그리스 문자
알파
1. Recorder
About 45,000 years ago, one recorder living in the Sulawesi island recorded what he had seen and felt or someone’s messages. His records are the oldest extant records among the origins of text and drawing at this time. For a long time, record was gradually divided into two fields: text and drawing. Also, progressing the history, each role given to text and drawing became more accurate. Moreover, text and drawing subdividing their roles, these were making subfields. Consequently, these became utterly different kinds of fields, ousted the original recorder from the history, and seated the entirely different two experts named writers and painters at the chair of the original recorder.
In the 18th century, the modernisation of humanities absolutely separated writing and painting by giving the role of drawing to painters and the role of writing to writers. Then, As the influence of modernisation have expanded to the whole of the world, the original recorders who left still in the world are becoming extinct. South Korea is also one of the societies where many original recorders disappeared. Before modernisation, one of the positions sustaining the ideology of Korean society is the Seonbi†. The reason the Seonbi could be regarded as one of the original recorders is the way to prove to be Seonbi was showing their proficients at poem-writing, calligraphy, and painting (called si-seo-hwa 詩書畵 in Korea). To the Seonbi, these three works are the same activities under the name of “Sam-jeol 三絶 (Three-manners).” A person who can write a poem well should have good calligraphy skills, and it is reasonable that someone who can paint well is skilful at writing. The feature that most of the art fields shared the same origin cannot only find in the Seonbi. In the record, we can easily discover the pieces of evidence, such as the fact that the origin of the words is derived from the drawing and the fact that poem, singing, and dancing were the same activity in the prehistoric age. Without the effect of modernisation, which definitely separated the cultural genres, the whole media would still stand on the roles as the subfields under one branch.
The East Asian cultural sphere is one of the societies where writers and painters are linguistically combined as the subfield of recorders until this time. It can be the evidence that in Korean, the word “writing 書” and the word “painting 畵” share these radical meanings a “brush 聿.” Thus, the reason, even though the phenomenon separating writers and painters exists in the entire world through the flow of history, these are not completely separated in the East Asian cultural sphere is perhaps because of the common physical feature that these two activities are working with a brush. Or, in this culture, since the rapid modernisation as much as one person can experience all changes, the division of writers and painters may be awkward so far.
† Scholar: A Confucian term referring to a person or class that embodies the Confucian ideology, especially as a title for a person with knowledge and character. [Source: Encyclopedia of Korean National Culture]
2. White Painting
In 2017, I painted a self-portrait named White painting. This painting is the portrait and the abstract in one, and it was drawn as the purpose to experiment when a painting can be called an abstract.
Then, in 2021, I came across that painting once again. Compared with the photo recording of the White painting when finished, the portrait looked again and is discoloured to shame to call it the White painting. It looks like a definitely different painting by the dust and smudges of paint. Unexpectedly, this painting looks like a landscape, not a portrait. In reality, if saying it is the landscape, that seemed plausible enough.
The art that I do is so tenuous. Not only the example of the tenuous link between the items in the lists I said in the above part 0. list, I have gotten this feeling much time before this. For example, I had the same experiences on the Masterpieces of Plates in my last project, Plastic Rattan Trash-can. when making these, I have a question that “If I saw the plate as a frame, is that the plate or the frame?” Also, when I did the project about office workers, since the contents about an apocalypse accounted for a large part, I felt difficult to conclude whether this project’s subject is office workers or an apocalypse.
Moreover, before those projects, the works related to the Metal object were aimed at the tenuous line of demarcation between works and artworks from the start. And now, I faced the easy-peasy change again by naming what I faced repeatedly.
So, representation is so weak. The origin of the alphabet “a” means buffalo in hieroglyphs in ancient Egypt transformed by Phoenician merchants. A buffalo represented by Egyptians became the alphabet “a” now. However, “a” is not a buffalo, and even not [aː] with no doubt.
Why is representation enacted, and how is right to explain the difference between the figure shown from the represented thing and the objects that will be represented? Although it hasn't been that long after this project started, many times of representation have already happened.
buffalo in hieroglyphs
buffalo in Semitic
Alep in
Phoenician alphabet
alpha in
Greek alphabet
3. 병풍
아이러니하게도 유럽권에서 근대화가 발생하기 시작한 18세기, 한국에서는 병풍을 궁중 행사를 기록하는 공식적인 매체로 지정했다. 이러한 병풍을 계병(契屛)이라고 부른다. 17세기까지만 해도 계병 외에 계첩, 계축, 계권, 등의 다양한 형식이 행사 기록에 사용되었던 것과 비교해 보면, 18세기, 병풍이 공식적인 매체로 지정된 것은 꽤 중요한 사건이 아닐까 싶다. 여러 사회적, 정치적 이유가 병풍을 공식적인 행사 기록 매체로 지정했겠으나,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이유는 병풍이 행사 기록에 탁월한 매체였다는 점일 것이다. 행사 기록 매체로 병풍을 사용하는 데에 있어서 참조되었던 것으로 보는 병풍의 용례는 계회도(契會圖)이다. 계회도는 문인들의 계회를 기록했던 것이다. 보통 계회도는 계회의 제목, 참여한 사람들의 정보, 나누었던 이야기, 선인의 글귀, 계회를 진행한 장소의 산수, 계회를 하고 있는 인물의 모습 등의 요소들로 이뤄져 있다. 한 장의 종이 위에 서예와 시, 그림이 모두 기록되는 계회도는 시서화 세 가지 방식의 혼용을 통해 단일 기록체(시, 글, 혹은 그림)로는 기록할 수 없는 기운생동 등의 감각적 영역까지도 기록해 내려는 시도였던 것으로 해석된다. 여기서 더 나아가 계회도는 육폭, 팔폭의 병풍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여러 회차의 계회를 한 화면에 기록해냄으로써 다른 장소, 시간에 진행한 계회에 동일한 감각을 부여했다. 이처럼 시서화 삼절을 가장 잘 녹여낼 수 있는 기록 매체였다는 특징과 동시에 시공간의 제약을 벗어나 기록 할 수 있었다는 특징이 있는 계회도 병풍은 당시로써는 가장 좋은 기록 수단이었을 것이다.
이외에도 병풍은 다양한 관점에서 기록체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행했다. 계회도의 경우 한 화면에 시서화가 함께 공존했다면, 19세기, 20세기 민간에서 제작된 병풍은 한 폭 내에서의 작용을 넘어 폭 간의 작용에 대한 실험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구한말 김규진의 그림, 서예, 시 등을 엮어 제작한 병풍이 그 예시다. 이는 각기 다른 시기에 제작된 화면들을 어떻게 운용하는지에 방점을 두고 제작된 병풍이라 볼 수 있다. 또한 당시에는 여러 화백들의 그림을 조합해 만든 병풍도 존재했는데 이는 앞선 김규진의 예시와 더불어 그림의 포스트프로덕션을 운용하는데 좋은 참조가 될 수 있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며, 민간에서 사례(四禮)를 치르는 데 병풍은 필수 예품이 되었고, 병풍은 생필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에, 17세기 조선 후기부터 왕실의 병풍을 대여해 사족들이 사용하는 일이 빈번해졌음은 물론, 더 나아가 18세기부터는 향약(鄕約)을 통해 병풍을 공동 소유화함으로써 향촌 공동체 구성원이 의례를 치를 때 병풍을 대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까지에 이르렀다. 현재에 치환해 생각하면, 주민이 필요할 때 동사무소에서 병풍을 대여해 주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조선 말기에 이르면 병풍의 수요가 높아짐과 동시에 다양한 회화 제작 방식이 발견되며 병풍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양면이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병풍, 판화로 제작된 병풍, 여러 사람의 글귀로 이뤄진 병풍 등 다양한 병풍을 찾아볼 수 있다. 민간에서 제작된 병풍에서는 시서화에 균등하게 역할을 부여하는 계병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방식의 실험이 존재했다.
4. 인터넷 뉴스
근대화는 글과 그림을 분리해 다른 학문으로 만들었으나, 현대의 생활에서 더 자주 접하는 것은 글 혹은 그림이 아닌 글과 그림으로 이루어진 매체이다. 인터넷만 접속해 봐도 알 수 있다. 인터넷 뉴스의 다수는 글과 시각 매체를 동반하고 있으며,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하는 정보도 모두 글과 그림이 함께 존재한다. 글과 그림은 점점 다시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내가 가장 많이 보는 플랫폼은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YouTube)’이다. 동영상은 시각 매체와 발화 혹은 자막이 합쳐져 말하기와 보기의 합일을 이루었다. 더 나아가 20세기 일본의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⓵동영상과 ⓶동영상 내의 인물들과 내레이터가 말하는 말들 그리고 ⓷기획자의 생각이 들어간 자막, 이 세 가지를 혼합하는 실험이 이뤄졌다. 이 실험은 성공적이었으며,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도 동영상, 발화, 자막, 세 가지가 함께 작동하는 것이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의 기본 구성으로 자리 잡았다. 이 세 가지 요소의 혼용은 그대로 인터넷 동영상 플랫폼에 자리 잡았다. 적어도 발화를 그대로 옮겨 적는 형식으로라도 동영상, 발화, 자막, 세 가지 요소를 충족시켜 인터넷 내의 동영상들은 제작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전 인류에게 있어서 서기와 화가의 완벽한 분립은 실패했다고 보는 게 맞을 수도 있겠다. 머리로는 서기와 화가가 분리되었고, 서로 다른 전문가가 존재하며, 각자가 각자의 영역의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실상 우리가 시각으로 받아들이는 정보는 점점 글과 그림이 혼합된 것이 되어가고 있다.
-
그림은 어떻게 명명하는지에 따라 쉽게 정체성이 변한다. 이는 그림 자체가 유동적인 매체이기 때문도 있겠지만, 어쩌면 우리가 시각을 통해 사물을 감각하는 것에 의심이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뱀을 보고 그것이 유혈목이인지 살모사인지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두 뱀의 생김새를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이전에 마주했던 기억이 흐릿하다면 우린 어쩔 수 없이 유혈목이와 살모사, 둘 다 조심할 수밖에 없다. 이때 도움이 되는 것이 명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가 유혈목이와 살모사를 책에서 읽었고, 그 생김새를 글자를 통해 기억하고 있다고 한들, 실제로 뱀을 마주했을 때 글자로 기억하고 있는 뱀이 정말로 현재 마주한 뱀인지 장담하고 행동할 수는 없다. 그림이 매우 유동적인만큼 글도 마찬가지로 매우 유동적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나는 앞서 리스트, 기록자, 흰 그림, 병풍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걱정한 한 가지 문제를 또 유보해 볼 수 있다. 현재 내가 지속해서 겪고 있는 두려움은 분류를 통해 작업을 완성해 낼 때, 과연 내가 행동한 그 분류가 진정으로 효용이 있는 것인지, 그 분류에 대한 명명이 없다면, 과연 작업은 작동하는지에 대한 걱정이다. 그러나 그림만큼 글이 유동적이라는 것은 리스트 내 요소들 간의 관계가 매우 연약한 만큼 제목도 연약하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살 것들’이라는 리스트의 제목을 받았을 때, 누가 어떤 상황에서 ‘살 것들’ 리스트를 작성했는지에 따라 그 내용은 천차만별로 변한다. ‘살 것들’이라는 제목에 의해 리스트 내 요소들 간의 감각이 변하는 것처럼, 반대로 리스트 내의 요소들에 의해 ‘살 것들’이라는 리스트 제목을 둘러싼 상황의 감각은 변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이 말이다.
- 살 것들
1. 계란
2. 파
3. 충전기
4. 우산
5. 우유
6. 핸드폰케이스
7. 120g A4 용지
** 살 것들
1. 처음처럼
2. 테라
3. 꼬깔콘
4. 종이컵
5. 군고구마
6. 폼 클렌저
7. 여행용 칫솔 치약
5. 꽃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는 누군가의 꽃이 되고 싶어 했다. 그는 그 자신을 명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를 명명해야 나는 나의 정체를 알 수 있다. 나는 나를 거울을 통해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거울을 통해서 본 나와 타자의 명명에 의한 나, 이 두 개의 간접적이고 유동적인 요소를 결합해 나는 나의 존재를 유추해 볼 수 있다.
L : II. 리스트 선언
1. 피해자 없는 투쟁
<흰 그림>은 자화상이다. 하지만 다시 본 <흰 그림>은 풍경화였다.
풍경화로 보이는 <흰 그림>을 재현해 보았다. 그럼 내가 재현한 그림은 자화상일까, 풍경화일까? <접시 그림>의 접시를 난 액자로 보았고, 그래서 난 접시를 액자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접시는 액자일까? 액자로 보인 접시를 접시라고 부르는 것이 옳은 행동일까? 과연 내가 <흰 그림>을 풍경화라고, 접시를 액자라고 말한다면 그게 진짜로 풍경화이고 액자인 걸까? 살 것들을 적어둔 리스트에 ‘살 것들’이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해서 과연 그 리스트가 진짜 ‘살 것들’ 리스트일까? 만약 그 리스트가 사실은 ‘이사 박스에 담겨진 것들’ 리스트였다면, 내가 ‘살 것들’ 리스트라고 한 것은 착각 혹은 거짓말이 된다. 선언하는 것으로 변하는 것은 단지 이 정보를 습득하는 사람들이 내가 생각하거나 착각한 방식으로 생각하거나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다시 본 <흰 그림>을 풍경화라고 선언했고, 풍경화 <흰 그림> 연작을 제작했다.
글과 그림의 허술한 상호보완은 제목과 항목의 허술한 상호보완으로 그리고 현상과 선언의 허술한 상호보완으로 연결된다. 그렇지만 김춘수는 누군가가 ‘그’에게 ‘꽃’이라고 선언을 해주었기에 ‘그’가 ‘꽃’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김춘수 본인도 선언당하고 싶다는 말을 통해 ‘그’에 대한 선언을 진실되게 만든다. 김춘수의 시처럼 타자에 의해 일어나는 선언만이 정체성을 부여해줄 수 있다면, 정체성은 오직 타자에 의해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 맞다. 고등학생 때 나는 미술 선생님께 “너는 붓으로 직선을 참 잘 긋는구나.”라는 선언을 받았다. 나는 그 선언으로 인해 붓으로 직선을 참 잘 긋는 학생이 되었고, 내가 붓으로 직선을 참 잘 긋는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이후 직선을 많이 활용했다. 이렇게 타인의 선언으로 나의 정체성이 형성되었을 때, 진짜로 내가 붓으로 직선을 참 잘 긋는 학생인지 아닌지, 그때만 잠깐 잘 했던 것인지, 그 선언으로 내가 직선을 잘 긋게 된 것인지, 내가 직선을 긋는 것을 좋아했었는지 알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이런 명제들은 선생님의 선언으로 인해 중요하지 않은 게 된다. 그러나 타인의 선언에 의해 내 정체성이 확립된다는 생각을 누군가는 안일한 책임 회피라고 볼 것이다. 진정 타인에 의한 정체성 확립은 안일하게 책임을 회피하는 행동일까? 그리고 그렇게 책임을 덜기 위해 타인의 선언을 바라는 것은 정말 좋지 못한 바람일까? 김춘수의 타인이 자신을 선언해주길 바란다는 그 선언은 그의 나태함에 기인하는 것일까?
다시 리스트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 리스트는 제목이라는 선언으로 그 정체가 결정된다. 내가 참기름과 의자를 묶어 <작품을 위한 리스트>라는 제목을 선언하면, 참기름과 의자는 <작품을 위한 리스트>가 된다. 그리고 참기름과 의자가 어떠한 경로로 이 리스트이 항목이 되었는지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질 수도 있겠으나, 내가 지지 않는다면 이 선언을 들은 타인이 그 책임을 지게 된다. 선언을 통해 나는 무책임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선언을 당한 사람은 책임을 덜기 위해 선언을 당하기 희망한 것이고, 선언을 한 사람은 책임을 덜기 위해 선언을 한 것이라면 책임을 물을 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선언을 당한 사람도, 선언을 한 사람도 아니다.
거울을 보고 그린 자화상은 나의 선언으로 인해 추상화가 되었다. 이때 이 추상화는 무엇을 보고 그린 것인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된다. 그리고 이 추상화를 보고 풍경화임을 선언했을 때, 그것은 더 이상 추상화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원체가 완전히 증발해 버린 것이다. <흰 그림>을 풍경화라 했을 때,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 누군가에게 있어서 <흰 그림>의 과거 추상화였고 자화상이었던 그 시절은 상상조차 허용되지 않는 영역이며, 추상화로서의 <흰 그림> 그리고 자화상으로서의 <흰 그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나도, 그 누구도 <흰 그림>의 과거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게 된다. 지금 나와 독자가 <흰 그림>에 대한 논의를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은 내가 <흰 그림>의 과거를 밝혔기 때문이고, 그러지 않았다면 이 논의는 없다. 마찬가지로 내가 직장인에게 “직장인”이라는 선언만 하고, “아포칼립스 세대”라는 선언을 하지 않았다면, 아포칼립스 세대로서의 직장인은 없다. 마찬가지로 김춘수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선언하지 않았다면, ‘꽃’인 ‘그’는 없다.
-
그렇다고 해서 <흰 그림>, 직장인 그리고 ‘그’가 수동적인 타자인 것은 아니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라 선포했을 때, 인도는 영국이 되었지만, 인도인은 그저 인도인이었다. 내가 모형키위에 대해 수많은 설명을 해왔지만 모형키위는 그저 여전히 정물일 뿐이다. 그래서 <흰 그림>도 그저 <흰 그림>일 뿐이다. 이렇게 볼 때 선언은 효력이 없다.
3. Byung-poong
Ironically, in the 18th century, when the modernisation started in Europe, Byung-poong† was designated as a formal medium to record the ritual event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in Korea. And this kind of the Byung-poong was called Gye-Byung 契屛 (the certifying Byung-poong). Compared with there was much media to record the ritual event of the Joseon Dynasty until the 17th century, in the 18th, the designation of Byung-poong as a formal medium to record seems an important event. While various social and political reasons affected to choice Byung-poong, the crucial reason was that Byung-poong was the most suitable form to record the ritual event, in my opinion. The example referred to use the Byung-poong as a recording medium is estimated Gye-hwe-do 契會圖 (a picture certifying party). Gye-hwe-do is the records of the Seonbi’s conference. Common Gye-hwe-do includes followed constituents: A title of the conference, information of people participating, contents dealt with, predecessor’s poems, land-scapes where the conference is opened, and the images of people doing the conference. Gye-hwe-do recorded the method of writing, poem, and painting on only one paper can be interpreted as the attempt to include the territory of senses like Qiyunshengdong (the kind of lively spirit) that the single medium(writing, poem, or painting) cannot do alone. Furthermore, Gye-hwe-do was produced as Byung-poong with six or eight screens. Through this way, Gye-hwe-do can record several conferences on one screen, giving the same sense to conferences hosted in different times and spaces. Like this, the Byung-poong of Gye-hwe-do having the feature that it can employ and mix the multiple media well and that can record without the spatiotemporal limitation would be the optimal choice to record.
Besides, Byung-poong faithfully played its role as a record from various perspectives. While the multiple processes existed on one paper in the case of Gye-hwe-do, Byung-poong made among ordinary people in the 19th and 20th centuries shows the trace of the more various attempts between screens over the attempts that occurred in the one paper. The Byung-poong of Kim Gyu Jin produced by binding his writings, calligraphy, and paintings is a good example. This Byung-poong can be seen with the point at how the screens that are made at different times and spaces can cooperate. Also, at that period, Byung-poong was produced by combining the paintings painted by many other painters. Therefore, this kind of Byung-poong can be a good reference to managing the post-production of painting with the Kim Gyu Jin’s Byung-Poong aforementioned.
During the late Joseon Dynasty, Byung-poong became living necessaries because holding a memorial service for ancestors became common in the commoners’ society. Thus, administrators frequently began to rent the Byung-poong from the Imperial House in the 17th century. Moreover, since 18th century, through making Byung-poong become a civil public property, anyone who did not have Byung-poong and lived in the town could rent the Byung-poong whenever they held a memorial service from their Community Center. In the end era of the Joseon Dynasty, the demand for Byung-poong became higher, and simultaneously, the method of painting was developed rapidly. With those changes, the method of producing Byung-poong was also varied. In that era were many kinds of Byung-poong: reversible Byung-poong, wood-cutting Byung-poong, Byung-poong containing the anonymous people’s writings, etc. Therefore, Byung-poong made by commoners have more abundant experiments that cannot be seen in the formal Byung-poong emphasising balance between writing, calligraphy, and painting.
† Korean traditional folding screens.
4. Internet News
Modernisation separated writing and painting and made them become different departments. However, what we see more in common is not the single medium like writing or painting, but the “media” blended a linguistic method and a visual method. You can easily know if getting online. Most internet news is composed of writing and visual medium, and most of the information shared and spread through the social network are the same. So writing and drawing are gradually becoming the one media again.
The media platform I see the most is the video site, YouTube. Video achieved the combining language and viewing through the compound of visual media and subtitles or auditive media. In addition, the 20th-century Japanese entertainment shows progressed the experiment to tie up the three methods: video, narrator’s or participants’ voice, and subtitles written the director’s thought. This experiment was successful, and also, the three methods, video, voice, and subtitles, became a TV entertainment shows’ basic component in the East Asian cultural sphere. Besides, this mix-using of those three methods settled on the internet broadcasting as it is. At least the way of translating the voice to the subtitles, the video uploaded on the online society should include those three methods, and it cannot be uploaded without any of the three methods.
In this light, the perfect separation between writers and painters seems to be failed. Although we know the perfect separation between writers and painters and the fact that the definitely different two experts exist and work in their own departments in our brains, what we actually see and accept through our sense organs gradually become the combined media.
-
Painting can simply change its identity by how it is named. This is because painting is the flexible medium, but also because we may have a lot of doubt to feel through our visual sense. When we face a snake, to distinguish a viper snake from a tiger keelback, we have to remember the feature of these two kinds of snakes. However, if our visual memory is blurred, we have no choice but to be careful of both the viper snake and the tiger keelback. What is helpful at this time is texting about it. However, the same is true of the opposite case. Even if we read the viper snake and the tiger keelback in a book and remember these appearances through texts, when we face a snake, we cannot be convinced that that snake in front of us is really the snake we read before. Text is as flexible as painting.
Through thinking like this, I can reserve the problem that I worried about the list, the recorder, the White painting, and Byung-poong once again. The worry now I have is that when finishing my work through classifying, whether the classifying made by my activity actually have utility indeed, and without naming my classification, whether or not my work can work indeed. However, that text is flexible as much as painting means to me that a title of a list is tenuous as much as the relationship between items in a list. In reality, when given the list What I will shop, the items in the list can be changed in the infinite variety by who wrote when and where. In opposition to that, if the title What I will shop can change the sense of the items’ relationship, the items in the list can also change the sense of the condition surrounding the title What I will shop, likes follows:
-
What I will shop
-
Eggs.
-
A bunch of spring onions.
-
Battery charger.
-
An Umbrella.
-
A pack of milk.
-
Mobile case.
-
120g of A4 paper.
** What I will shop
-
Soju.
-
Six bottles of beer.
-
Corn snack.
-
Paper cups.
-
Fried sweet potatoes.
-
Form cleanser.
-
Travel toothbrush and toothpaste.
5. Flower
Flower
Kim Chun-su
Before I called his name,
He was merely
He was nothing more than a gesture.
When I called his name,
He was coming to me and
Became a flower.
Like I called his name,
Call my name
Suitable for my colour and scent.
Going to him, I want to
Become his flower.
We all want to
Become something.
I to you, you to me want to
Become an indelible sense.
Kim Chun-su wanted to become someone’s flower because he could not name himself. I can realise my identity by the only way someone names me because I can see myself only through the mirror. I can only estimate my existence by my indirect and fluid appearance seen through the mirror and named by others.
L:II. The Manifesto of Lists
1. The Victimless Struggle
The White painting is the portrait. However, the White painting looked again is the landscape.
I represented the White painting as the landscape. Then, is this painting represented by me, the portrait or the landscape? I saw the plate of the Masterpieces of plates as a frame, so I decided to use the plate as a frame. Then, is the plate a frame? Or, is it more reasonable to call the plate looks like a frame the plate? Indeed, if I call the White painting the landscape and the plate the frame, is those really the landscape and the frame? As I named the title What I will shop to the list, is this list actually the list of What I will shop. If the list had been the list What was put into a box for moving, it could become a lie or a misunderstanding to saying this list is the list of What I will shop. The fact changed through the declaration is only to make someone get information misunderstood or think as the way I have misunderstood.
I declared that the White painting looked at again is the landscape, and I produced the new White paintings as the landscapes.
The lax interaction between the writing and painting connects with the lax interaction between the title and the items and that between the phenomena and manifestoes. However, Kim Chun-su said ‘he’† could become a flower because someone called ‘him’ a flower. Then, Kim got validity on his declaration for ‘him’ by saying himself was also wanting to be declared. If only the other person’s declaration can give the identity like his poetry, it is proper to conclude that identity can be made by only others’ declaration. When I was a high school student, My teacher declared to me by his words, “You are so good at drawing a straight line.” Through that declaration, I became a student good at drawing a straight line, realised I’m good at that, and began to use more straight lines on my drawings. However, when others’ declaration makes my identity like that, it becomes unable to know that whether I was actually a student who could draw a straight line well, I did well that only one that time, I became doing that well by his declaration, or I actually loved to do that. Moreover, These propositions become meaningless because of his declaration. Someone can regard that others’ declaration makes someone’s identity valid as evasion of responsibility. However, is that obviously evasion of responsibility? Also, is it a bad idea to wish someone’s declaration to establish my identity? Then, Did Kim Chun-su’s wish to be declared by others come from his indolence?
Back to the story of a list again, the identity of a list is determined by a declaration, the other words, by a title. If I put sesame oil with a chair and declare that their title is What for work, then the sesame oil and chair become the list What for work. After then, I can take my responsibility for the route how these became the items in the list, but If I don’t, some others who heard my declaration have no choice but to take responsibility for them upon themselves. So, I can be free from my declaration for them by declaring them. Consequently, if the declared person wanted to be declared to be free from responsibility and the declaring person also declared to be free from that, who should take the responsibility is not the declared person and also not the declaring person.
The portrait that I painted looking at my face through the mirror became the abstract by my declaration. After that declaring time, it is no more matter that what I looked at and drew. Also, after I saw this abstract again and declared it is the landscape, It is no more important whether or not this painting is the abstract. When the White painting is called the landscape, to some people who don’t deny that opinion, the time when the White painting was the abstract and had been the portrait is the space never accepted to imagine, and the White painting as an abstract and the White painting as a portrait do not exist ever. Thus, anyone, and I also, have no need to imagine the White painting’s past. The reason now you and I can progress the story about the White painting is because I revealed the White painting’s past, and If not, this discussion has not existed. Likewise, if I declare the office worker only as of the office worker, not as the apocalypse generation, the office workers in the apocalypse generation did not exist. Likewise, If Kim Chun-su did not declare by the words “When I called his name, He was coming to me and Became a flower,” ‘he’ as a flower cannot exist.
Although, the White painting, the office worker, and ‘he’ is not merely passive. When the UK declared that India was the UK, India became the UK, but Indians were still Indians. I have explained and declared numerous times about the Model-kiwi, but the Model-kiwi is just one of still-life. Thus, the White painting is just the White painting. Sadly, under this perspective, declaring have no power.
† In this article, ‘he’ written in a single quotation mark means ‘he’ in the Kim Chun-su's poetry.
2. 둘이 될 수 없어
병풍은 여러 매체를 혼합해 단일 매체가 내지 못하는 효과를 탁월하게 만들어냈다. 그리고 여러 매체의 혼합이 효과적이며 인간친화적이라는 사실은 탈근대와 함께 다시금 글과 그림을 한 매체로 혼합하려는 시도들과 그 성공으로 증명되었다. 그러나 이는 자칫 서로에게 책임을 유보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림으로 충분히 설명될 텐데 글은 그냥...” 혹은 “글로 충분히 설명될 텐데 그림은 그냥...” 과 같이 말이다. 이런 상황을 리스트는 잘 보여준다. 항목과 제목, 그 무엇도 책임을 지려하지 않고 나약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양쪽 요소 모두 그리고 이들의 상호관계가 매우 허술해졌음에도 리스트는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 매체의 혼합은 여러 매체 모두 그리고 매체 간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서로에게 유보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양질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탈-매체를 이뤄내는 것이다. 매체와 관계성에 대한 논의가 사실상 필요 없는 것이 됨으로서 내용을 강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렇게 남은 내용은 선언이 된다.
어쩌면 다양한 한국 회화의 매체 중 가장 큰 양을 차지하는 병풍이 여타의 매체들에 비해 많은 담론을 생성하지 못했던 것은 근대적 매체 중심의 미술사학 때문일지도 모른다. 근대의 분류를 통한 분석은 병풍을 세분화해 사군자, 산수, 서예, 등으로 나누어서 보았기에 병풍 자체에 대한 논의로 회귀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이미 포스트프로덕션에 대한 논의가 마무리 되고, 포스트모더니즘을 넘어선 방식으로 미술사를 재고하는 시점에서 병풍은 여러 매체가 혼합되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내는 분야가 아닌, 병풍 자체로 읽힐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해강 김규진의 여러 그림을 묶어 만든 병풍, <난초, 대나무와 글씨>를 각 폭의 그림들로 분석하지 않고, 그 병풍 자체로 분석해낼 수 있다. 그리고 이 때 각 폭이 갖는 의미에 대한 논의는 무의미한 것이 된다.
3. 관계성
관계는 하나가 아닐 때만 생긴다.
기록이 글과 그림 두 분야로 나뉘기 전에는 글과 그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글 혹은 그림이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기에 기록 내부에서의 관계성 탐구 자체가 매우 추상적인 작업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화 이후로는 분화된 매체들을 함께 사용하기 위해서 매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효과, 즉 관계를 고려해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는 글과 그림을 최대한 가까이 붙이기 위한 노력에 어떤 때보다 심혈을 기울이는 현시점에서 그 어떤 때보다 글과 그림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심화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관계는 둘이기에 생긴다. 반대로 말하면 관계를 고려한다는 것은 글과 그림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며, 이와 같이 관계에 대한 논의를 이어나가는 방식으로는 글과 그림을 하나로 만들 수 없다. 글과 그림을 나누기로 한 선언 이후로 글과 그림의 관계는 영속한다.
2. Cannot Be the Two
Byung-poong combined the different kinds of media and eminently made the sensory effect that the single medium cannot make. And the fact that the mixing of several media is effective and human-friendly was proved by successful attempts to mix text and pictures into one medium again with postmodernity. However, this mixture may result in withholding responsibility for each other, like that “It'll be fully explained by the drawing…” Or “It'll be fully explained by the writing, but the drawing is just…” Also, lists are showing that problem well. Items and titles, anything else, become weak without trying to take responsibility. However, even though both elements and their interrelationships have become very poor, the list is playing a good role. Mixing media can produce quality results while retaining discussions on various media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media to each other. The mixture of media can form a post-medium(or de-medium). It becomes possible to emphasise the content by virtually eliminating the need for discussion on the relationship with the media. Thus, the remaining content is declared.
Perhaps it is because of modern media-centred art history that Byung-poong, which accounted for the largest amount of various Joseon painting media, did not produce more discourse than other media. There was a long time to return to the discussion of Byung-poong itself because Analysis through modern classification made Byung-poong was subdivided and divided into still-life, landscape, calligraphy, etc. However, at this time, when discussions on post-production have already been completed, and art history is reconsidered in a way beyond post-modernism, Byung-poong should be read as Byung-poong itself, not an area where various media are mixed to create new meaning. Now, we can analyse Byung-poong of Kim Gyu-Jin, named Orchid, Bamboo and Letters, made by combining several paintings as itself, not as each painting. And at this time, the discussion of the meaning of each painting becomes meaningless.
3. The Relationship
A relationship only exists when there are not one.
Before the record was divided into two fields: writing and painting, it would have been difficult to have concerns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writing and painting. This is because even the concept of writing or painting does not exist, so the exploration of relationships within the record itself would have been a very abstract work.
However, after separation, in order to use differentiated media together, the effects, that is, the relationships that occur between the media, must be considered. So, at this point in time, when we put our heart and soul into the effort to attach texts and paintings as close as possible, the discussion on the relationship between texts and paintings is deepening more than ever.
However, a relationship exists since there are two. Conversely, considering a relationship means that writing and painting are not one, and in this way, writing and painting cannot be made into one. The relationship between writing and painting will be ever permanent after the declaration to divide writing and painting.
4. 선언
리스트 선언
선언은 관계를 만든다.
선언자와 피선언자는 선언을 통해 양립을 인정한다.
양립함, 선언자와 피선언자로 나뉘는 것이 관계가 선언으로 형성됨을 증명한다.
분리, 분과, 재건, 주제, 시간, 이야기, 울타리, 전선, 이름은
모두 선언을 통해 형성된다.
선언은 항목의 자리를 견고히 한다. 분리될 수 없던 것이 선언으로 분리된다.
분리는 관계의 조건이다. 선언은 관계를 만든다.
선언은 선언자와 피선언자의 모든 책임을 선언에 양도함으로 선언자와
피선언자의 책임을 회피할 가능성을 연다.
선언은 선언이 분리와 관계 형성 이외의 효력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인정한다.
어떤 내용의 선언이든 그것은 선언자와 피선언자를 나누는 것 외의 다른
의미 창출을 해낼 수 없으며 이후 선언자는 그대로 선언자, 피선언자는 그대로 피선언자로 존재한다.
그러나 선언으로 만들어진 ‘관계’가 선언자와 피선언자를 재정의할 수는 있다.
이는 선언이 선언자와 피선언자를 나누었기에 발생한 ‘관계’에 의해 선언자와
피선언자가 변화한 것이지 선언은 이 변화에서 수행한 것이 없음을 의미한다.
이 과정을 통해 선언은 책임을 ‘관계’에게 양도한다.
2021.10.9.
4. Declaration
The Manifesto of Lists
I accept that a Manifesto makes a Relationship.
A manifesto opens the possibility of avoiding the responsibility of the declarator and the declared by transferring all responsibilities of the declarator and the declared to a manifesto.
In addition, the declarator and the declared recognise their differentiation and compatibility through a manifesto.
Compatibility, dividing into the declarator and the declared, clarifies that a relationship is created between the two.
I accept that a Manifesto has no effect other than Separation and Relationship Formation.
Whatever a manifesto of content, it cannot create meaning other than dividing the declarator and the declared. After a manifesto, the declarator exists as the declarator, and the declared exists as the declared.
However, the “relationship" created by the manifesto can redefine the declarator and the declared.
This means that the manifesto was changed by the “relationship” that occurred because the declaration divided the declarator and the declared, but the manifesto did not take place in this change.
Through this process, a Manifesto transfers Responsibility to a “Relationship.”
9th Oct. 2021